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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잠이 쉬이 오지 않아서

# 오늘 밤도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반을 넘었으나 이상하게 졸리기는 커녕 의식만 더 또렷해져간다. 그동안의 잡념들과 자책, 걱정, 짜증들이나 털어버리려 노트북을 집었다.


# 불안증세가 다시 스멀스멀 도진다. 오늘은 커피를 많이 마셨다. 카페인 때문인지 불안과 빈맥(맥박이 빨라지는 증상)이 약을 먹기 전보다는 덜했지만 공황이 찾아오듯 심해졌다. 내일은 커피를 먹지 말아야 겠다. 그동안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옷을 불편한 것으로 입어서 그랬는지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특히 저녁에.


# 입에 맞지도 않는 맥주를 마시고 우두커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았다. 보통 때라면 잠들기 마련이건만, 이상하게 잠이 찾아오질 않는다. 빨래를 널고 베란다에서 하릴없이 달이나 쳐다보았다. 자책, 걱정, 짜증, 분노, 우울감이 찾아왔다.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예전과 똑같더라. 문제는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


# 세달여만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시원해져서 좋다. 옆머리는 펑퍼짐하게 퍼지고, 윗머리는 푹 가라앉는게 영 마음에 들지않았고, 더벅머리를 하고 다녀서 불편했으나 바빴다는 변명으로 포장된 귀찮음으로 여지껏 미뤄왔었다. 나는 늘 이래왔던 사람이라 생각하여 자책이 시작됐다. 사실 그 전에 다른 이유로도 자책이 시작되었긴 했지만. 머리와는 상관없지만, 나는 항상 나쁜 원인을 다른 것으로 포장하여 타인은 물론 나 자신까지 속여왔던 사람이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당당하길 원해왔지만, 어딜보나 그러지 못한 내 모습은 변명을 꾸며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했던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다자이 오사무처럼 나도 죽기 전에 언젠가 "부끄러웠던 삶이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라는 예감이 나를 감싼다. 그러면서도 내 특유의 피해의식 때문에 한 마디를 더할 것이다.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억울하기도 했어요."라고 말이다.


# 어느덧 갑자기 스물 일곱살이 된 느낌이다. 주위의 또래 중 누군가는 대단한 것을 이루었고, 칭송이나 축하를 받는다. 나는 그것에 시기와 질투를 느낀다. 아주 솔직하게 말이다. 그러곤 내 모습을 직면하며 "지금까지 나는 무얼 했지?"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럼 거울 속의 나는 말한다. "그냥 오늘같이 살아왔어. 뭔가 하려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된 것은 없었고 부산하기만 했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너는 그냥 쳇바퀴 속에서 빨빨대기만 한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서 되돌아 오는 답변은 어느누구의 말보다 더 날카롭고 시리다. 갑자기 어른의 문턱 앞에 세워진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우나 준비된 것이 없었다. 그러기에 더욱 불안함이 몰려오는 것일까.


#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불안에 휘둘려 사는 사람은 아니다. 아마 아무 근거도 없는 낙천, 혹은 태만함에 스스로 녹아버리기 때문 아닐까. 불안함에 딱딱하게 고체처럼 굳어져 버린 나는, 근거 없는 낙천에 녹아버리는 액체와 같은 사람이다.


# 앞으로 살아가며 내가 어떤 것들을 원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욕심으로 가득찼던걸까, 아니면 아주 작은 것만 원했던 걸까. 지금은 뒤섞인 상태인 것 같다. 조금이나마 공평한,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철없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내가 억울해왔던 만큼 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은 더러워져버린 지금의 내게는 모순적이기만 하다.

   앞의 것과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소소하게, 그리고 편하게 살고싶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는 그 평범보다 항상 아래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보단 많이 나아진 채로 편해지고 싶다. 그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경차라도 이용하여 어디든 갈 수 있는 정도, '앞으로 당장 어찌 살아야하나'라는 걱정에서 '다음 달 카드값이 조금 더 나오겠네'라는 걱정으로 바뀔 정도로만.

   이 욕구들은 섞여있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후자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나 혼자 세상을 바꿀 수도 없으며, 세상은 그냥 그 자체로 불평등하게, 공평하지 않게 설계되어졌고 운영되어지고 있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 며칠 전, 학교를 다니며 배웠던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전공을 사회학으로 선택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살면서 겪게 될 것들을 책으로, 강의로 배웠구나'라며 씁쓸하게 피식 웃었다. 그때의 단단했던 믿음과 그것을 바탕으로 했던 야망이 너무나도 헛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우스워서. 어리기도했으며 동시에 어리석었다. 돌아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과거의 나를 어리고, 어리석으며, 어리숙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 도덕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윤리적이지도 못한 원망에 빠져있다. 원망하며 남탓을 한다고 해서 지금 뭐가 달라지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망을 보내는 대상에 대한 미운 감정이 커져간다. 이런 면으로 볼 때, 나는 아주 나쁜 사람이다.(내 스스로 나를 나쁘다 지칭하는 것도 착한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닐까) 동시에 나는 원망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전적으로 억울해 할 만한 사람인지 나 조차도 의문인데...


#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보스를 위해 인생을 바쳤지만, 그의 여자를 탐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기까지 하려하며 그를 막다른 코너로 몰고 간 보스 김영철에 복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보스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나도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유라도 알고싶다고 말이다. 영화에서 이병헌이 하는 물음을 곱씹어 보니 그 대사는 영화를 함축하고 있었다. 김영철에겐 그 여자가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다바쳐 보스를 위해 개처럼 살아온 삶이 이런 이유로 송두리째 무너져야 하는 것인지, 그만큼의 가치도 없는 삶이었냐는 것인지 하는 존재의 흔들림인 것이다.



# 영화 <실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설경구는 그의 상관인 안성기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리고 분노한다.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만약 어느날 내가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다 해도 쉬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 그리고 나는 나에게도 말한다. 나의 변명을 포장하는 것 또한 비겁한 변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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